안목을 사랑한다면 [심재휘]
해변을 겉옷처럼 두르고
냄새나는 부두는 품에 안고
남대천 물을 다독여 바다로 들여보내는
안목은 한 몸 다정했다
걸어서 부두에 이른 사람이나
선창에 배를 묶고 뱃일을 마친 사람이나
안목의 저녁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방향은 밤과 낮이 달랐다
그때마다 묶인 배는 갸웃거리기만 했다
모든 질문에 다 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물이 끝나는 곳인가 물으면
그저 불을 켜서 저녁을 보여주는 안목
묻는 건 사람의 몫이고
밤바다로 떠나가는 배를 보여주기만 하는 안목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안목에게 묻지를 말아야지
불 켜진 안목을 사랑한다면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는 말아야지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
* 어떻게 살 것인가?
한참 고민하던 때는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 때일 것이다.
개천 물 흐르듯 하던 고민이 강심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삶의 지표가 강심의 속도에 좌우되어 있었다.
삶에 대한 안목이 그 때 있었더라면 좀더 넓은 물을 만났을 때
속도에 좌우되거나 하지 않았을 게다.
불빛 없는 밤바다에 떠있는 게 아니라 불 켜진 안목으로 살아갈 게다.
하지만 이왕에 바다에 떠있다면 지금의 안목으로 삶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도 늦지는 않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야 할 게다.
강릉의 안목에 가서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 하고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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