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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친밀한 타인 [채수옥]

by joofe 2022. 4. 28.

 

 

 

친밀한 타인 [채수옥]

 

 

 

 

  꼬치전을 만들었다 명절이므로 길고 가느다란 나뭇가

지에 대파를 끼우고 햄을 끼우고 대파를 끼우고 맛살을

끼우고 대파를 끼우고 느타리버섯을 끼우고 커튼처럼 길

게 늘어뜨린 나뭇가지에 노을이 끼워지고, 모퉁이 뒤 빨

간 지붕이 끼워진 채 나란히 앉아 텅 빈 아버지 옆에 엄 

마, 사이에 오빠와 나 옆에 동생들이 한 나뭇가지에 끼

워져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허옇게 흩날리며 미끄러지다,

계란 물에 몸을 적시고 눈물 콧물 흘리며 뜨거운 프라이

팬 위에서 지글지글, 징글징글 가늘고 얇은 나뭇가지 하

나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줄에 꿰어 비좁은 옆을 탓하고

수상한 냄새를 역겨워 하며, 꿰뚫어진 서로를 증오하다

소식을 끊고 꼬치가 익어갈 즈음 한 줄이었음을 깨닫고,

한 줄을 원망하며 대파 다음 햄, 대파 다음 맛살처럼 텅

빈 아버지 옆에 엄마, 사이에 오빠와 나 옆에 동생들이

가늘고 얇은 가지에 꿰어진 채 지글지글 징글징글

 

             - 덮어놓고 웃었다, 여우난골, 2022 

 

 

 

 

 

* 꼬치전을 평소에 먹는 집은 없을 게다.

명절에나 꼬치전을 하고 동태전을 하고 육적을 하고 삼색나물을 하고......

가족이 모두 모이기에는 설과 추석 명절이 가장 좋긴 하다.

명절이면 늘 똑같은 음식을 차리고 똑같은 상차림을 한다.

그런데 가족이 모이면 늘 똑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 언니나 동생은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왜 난 안 했어?

- 언니나 오빠는 걸스카웃, 보이스카웃을 시키고 난 왜 안 시켰어?

그때는 이래서 저래서라고 아무리 똑같은 얘기를 해도 늘 똑같이 상차림 되는 이야기들.

한 줄로 꿰어진 가족이라 늘 반복되는 대화.

징글징글하게 눈물 콧물 흘리는 분위기가 해마다 하나의 꼬치로 꿰어진다.

 

그래서 명절에는 모이지 말자. 생일 때나 모여서 밥 먹자.

생일에 만나서까지 눈물 콧물은 흘리지 않을테니.

땅.땅.땅.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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