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 [최문자]
하나님은 모처럼 옆에 있는데
나는 둥근 무릎이 없고 긴 머리털이 없고 향유가 동이
난 여자
마리아가 꿈처럼 옥합을 깨뜨릴 때
나는 1데나리온*을 위해 강의하러 갔지
주머니 단팥빵은 얼고
눈보라가 쏟아졌다
텅 빈 겨울
아무나 그런 눈보라 꿈을 꾸나
나의 기름은
꿈이 없나 봐
나의 빵은 언제 향유가 되나
저기 지나가는 여자들 모두 향유가 넘쳐
여름에 앞치마 가득 꺾어 둔 나드 꽃
꽃이 넘쳐
마리아는 데나리온을 셀 줄 몰라. 300데나리온을 그냥
흘려보내. 흐르다 옥합을 깨뜨리고 다 흐르고 나니 나드
꽃은 눈물이 되었지.
흐를 수 없어 빈 손 문지르며 저기 길에 서 있는 여자
함박눈이 쏟아졌지
빵은 주머니에서 고드름처럼 얼어붙고
자꾸 목이 메었다
향유보다 눈물이 먼저네
나는
*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부은 나드 향유의 가격을 당시 화폐로 환산한 가
치. 1데나리온은 건장한 남자가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임금임.
-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민음사, 2022
* 하나님이 날이면 날마다 나타나는 게 아닌데 모처럼 옆에 있다니 이런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의 머리에 부울, 혹은 발에 부울 향유가 없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옥합에 든 나드 향유는 300데나리온을 주어야 하는 고가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중 삼백일을 일해서 벌어야 옥합 한 병을 살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옥합을 깨뜨려 흘려보낸다는 건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경배일 게다.
손이 붉다는 건 맨손이라는 것이고 맨손이라는 것은 빈 손이라는 의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이에게는 빈 손에 향유 한 방울도 묻힐 수 없는 가여운 처지이다.
그런데 모처럼 하나님이 와도 향유 한 방울을 바칠 수 없으니 향유보다 눈물이 앞설 수밖에.
얼어버린 빵을 먹고 사는 나에게는 향유 한 방울도 드릴 수 없으니 하나님이여, 나의, 이 언 빵을 향유로 바꾸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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