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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구부러지는 것들 [박용하]

by joofe 2022. 6. 5.

 

 

 

구부러지는 것들 [박용하]

 

 

 

 

  어깨가 구부러진 청솔들에게도 한때 빛나는 유년이 있

었으리라

  보기보담 일찍 구부러진 공원의 낙엽들을 나는 좋아한다

  구부러지는 식물들 그것은 윤회를 닮아 있다

  강물은 오늘도 무서운 속도로 상류의 물들을 하류로

  실어 나르고

  둔덕의 풀꽃들은 그림자 길게 휘어 달빛을 잡는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휘휘 젓는 직선에 괴로워한다

  등이 구부러진 과일들

  등이 구부러진 노인들

  등이 구부러진 황소

  야! 아예 온몸이 구부러짐의 시작의 끝인 시작의

  둥근 공과도 같은 하루는 있는 것일까

  구부러지다 바로 서고 바로 서다 구부러지는 풀

  나는 그 풀들의 유연성을 삶이라는 이름으로 곰곰 되뇌

어본다

  구부러지는 것들은 자연의 숨통을 닮아 있다

  흘러가는 강의 휘어짐

  세상에서 세상 밖으로 이어진 길들

  한사람에게만 마음이 휘어진 여자

  하지만 구부러진다는 것이 너에게 굽실거리는 것과 같

을 때

  그것이 통념일 때 우리는 압제된 사회에 살고 있네

  겨울바람에 구부러지다가도 바로 서는 한겨울의 나무

들을 나는 좋아한다

  구부러지는 것들

  구부러지다가도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바로 서는 것들

  그와 같은 것들은 너무 적다

 

- 26세를 위한 여섯 개의 묵시, 달아실, 2022

 

 

 

 

* 구부러진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도 사실 서 있는 것보다 구부러진 것들이 많다.

메타세콰이어처럼 수직으로 자라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는 구부러져 있을 게다.

심지어 풀들이 보여주는 구부러짐이란 잘 적응하는 것이니 나무랄 수가 없다.

그게 잘(?) 사는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직선이 되지 않고 구부러진다면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구부러진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는 의미로 꼿꼿이 서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구부러진 것을 펴자는 뜻이다.

시인의 마음처럼 구부러지다가도 바로 서는 한겨울의 나무처럼 산다면 조금 더 나아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굽은 것 바로 펴자’를 오래 생각해본다.

바로 서는 것이 너무 적더라도.

 

 

 

** 22년 시와편견 여름호에 실린 주페의 '시와 감상글'입니다. 일명, '파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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