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형이 되기 위하여 [강신애]
사각의 방에 들어가
사각의 책상에서
사각의 잠을 잤다
일어나니 내 몸이 사각형이 되었다
볼록렌즈처럼
나를 통과하는 무엇이나 담던
고통의 한 정점을 향해
타들어가던 몸뚱이를 벗었다
날카롭게 모서리진 팔다리,
꼭지점으로 밀집해 들어가는
숨결의 팽팽한 긴장
둥글어지기 위해 눈빛조차 궁글려야 했지
둥글어지려는 내 안의 벽을 허물어야 해
여기서 나가면 공기가 나를
지하로 굴려버릴 거야
(둥근 것은 죄야)
사각형의 방에 빈틈없이
꼬옥 끼워지기 위해,
일렁이는 생각들을 거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창작과비평사, 2004
* 대학시절엔 자기 강의 시간에나 수업을 듣고
비는 시간은 잔디밭에 앉아있거나 써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층 써클실에서 학생회관 앞 광장을 내려다보면
꽤 안정적이다.
땡강땡강 종이 울리면 강의실에서 빠져나와 다른 건물로 가거나
잔디밭에 앉으려고 자리를 잡는 게 보인다.
- 야,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어!
소리치다가도 십분 뒤엔 다시 움직임이 사라지고 꽤 안정적이 된다.
사각형은 꽤 안정적인 편이다.
물론 외력이 계속 가해지면 밀리고 밀리다 조금씩 마멸되고
끝내는 둥글게 된다.
둥글어지면 망나니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닐 것이다.
지금 지구의 모습은 사각형이 점점 사라지고 모든 게 둥글어지고
그래서 모든 게 굴러다니고 있다.
하여 인간들도 덩달아 굴러다니고 있다.
다시 땡강땡강 종이 울리고 다시 사각형의 자리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테다.
안정적인 세상을 꿈꾸면 안될까?
모두 호흡조절을 하는 시간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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