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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사각형이 되기 위하여 [강신애]

by joofe 2021. 10. 11.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는 사각형은 죄악이야! 온통 둥글게 건축했다.

 

사각형이 되기 위하여 [강신애]

 

 

 

 

사각의 방에 들어가

사각의 책상에서

사각의 잠을 잤다

일어나니 내 몸이 사각형이 되었다

 

볼록렌즈처럼 

나를 통과하는 무엇이나 담던

고통의 한 정점을 향해

타들어가던 몸뚱이를 벗었다

 

날카롭게 모서리진 팔다리,

꼭지점으로 밀집해 들어가는

숨결의 팽팽한 긴장

 

둥글어지기 위해 눈빛조차 궁글려야 했지

둥글어지려는 내 안의 벽을 허물어야 해

 

여기서 나가면 공기가 나를

지하로 굴려버릴 거야

(둥근 것은 죄야)

 

사각형의 방에 빈틈없이

꼬옥 끼워지기 위해,

일렁이는 생각들을 거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창작과비평사, 2004

 

 

 

 

 

* 대학시절엔 자기 강의 시간에나 수업을 듣고

비는 시간은 잔디밭에 앉아있거나 써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층 써클실에서 학생회관 앞 광장을 내려다보면 

꽤 안정적이다.

땡강땡강 종이 울리면 강의실에서 빠져나와 다른 건물로 가거나

잔디밭에 앉으려고 자리를 잡는 게 보인다.

- 야,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어!

소리치다가도 십분 뒤엔 다시 움직임이 사라지고 꽤 안정적이 된다.

사각형은 꽤 안정적인 편이다.

물론 외력이 계속 가해지면 밀리고 밀리다 조금씩 마멸되고 

끝내는 둥글게 된다.

둥글어지면 망나니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닐 것이다.

지금 지구의 모습은 사각형이 점점 사라지고 모든 게 둥글어지고

그래서 모든 게 굴러다니고 있다.

하여 인간들도 덩달아 굴러다니고 있다.

다시 땡강땡강 종이 울리고 다시 사각형의 자리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테다.

안정적인 세상을 꿈꾸면 안될까?

모두 호흡조절을 하는 시간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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