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 그림 [윤제림]
게랑 물고기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춤추던 새들은 하늘로 날려보내고
바다와 모래밭은
제자리에 있게 하고
구름은
그냥 흘러가게 두고
마침 심심해 보이는 들판의 소한테
사정 얘기를 잘 해서
그 소가 너끈히 끌 만한 달구지나 한 대 빌려서
가장(家長)이 부르면 뒤도 아니 돌아보고
냅다 뛰어오는
식구들만
들꽃 한 다발처럼 싣고서
-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문학동네, 2019
* 가진 것 없어 옷도 변변히 입지 못했으나
자유롭고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떠나는 식구.
부르면 냅따 뛰어오는 이 정도의 사랑이면
어디 간들 못 살 일이 있겠는가.
평생 일만 하는 소와 함께 떠났으니 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수레 굴러가듯
구름 흘러가듯 안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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