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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견디다 [천양희]

by joofe 2021. 10. 19.

오천년 가량을 살았다는 나무다. 우찌 견뎠누.

 

견디다 [천양희]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번

꽃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속에서 천일을 견디다

스물다섯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 살아있다는 건 견딘다는 거다.

하루 하루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자연환경 속에서, 혹은 사회환경 속에서

견뎌내야만 살 수 있다.

견디다 견디다 죽어야만 견디지 않게 되는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혹독한 환경일수록 견디기 어렵지만 그래야만 살 수가 있다.

산다는 게 참 고통이라는 거다.

고통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면서 언제 풍랑을 만날지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언제 상어가 덤벼들지 모르는 순간 순간을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게 삶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모두 짊어지는 고통이다.

고통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아이러니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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