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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어두워서 좋은 지금 [박소유]

by joofe 2021. 11. 22.

노명희 화가 그림

 

어두워서 좋은 지금 [박소유]

 

 

 

 

처음 엄마라 불러졌을 때 

뒤꿈치를 물린 것 같이 섬뜩했다

말갛고 말랑한 것이 평생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뜨거워서 

이리 들었다 저리 놓았다 어쩔 줄 모르다가

나도 모르게 들쳐 업었을 거다

 

아이는 잘도 자라고 세월은 속절없다

낯가림도 없이 한 몸이라고 생각한 건 분명

내 잘못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복음이었나

앞만 보고 가면

뒤는 저절로 따라오는 지난날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깜깜 무소식이다

 

그믐이다

어둠은 처음부터 나의 것

바깥으로 휘두르던 손을 더듬더듬 안으로

거두어들였을 때 내가 없어졌다

 

              - 어두워서 좋은 지금, 천년의 시작, 2011

 

 

 

 

 

 

 

* 뭐든지 처음은 앞만 보고 갈 정도로 뒤는 돌아보지 않고

끝도 생각하지 않는다.

달이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도록 

오오, 신기해 점점 크고 밝아만 져!

워낙은 어둠에서 시작한 것인데 다시 어둠이 될 때에서야

맞아, 맞아 어둠이 처음부터 나였어, 늦게 오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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