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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감상

종소리 [송문희]

by joofe 2021. 12. 27.

 

 

종소리 [송문희]

 

 

 

 

외할머니의 옛날 옛적에는 때죽나무가 살았네

몇 알의 열매로 물고기들 떼죽음 당한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

 

때죽나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잠이 달아나버렸네

 

그런 독하고 무서운 나무를 만났네

계곡을 걷다가

나무가 방금 놓친 꽃이 바위를 하얗게 덮어

꽃섬이 되었네

 

캘리그라피 밑그림으로 그려 넣은

때죽나무는 그리움의 배경이 되고

나는 종소리를 듣네

 

그 고요한 잎 그늘의 오후를 잊지 못하네

 

토막토막 난 기억은 얼기설기 이어져도

순결한 꽃을 피우고 독한 열매를 맺는

때죽나무의 이면은, 그대의 이면 같아서

 

            - 고흐의 마을, 달아실, 2020

 

 

 

 

 

 

 

* 시 제목을 때죽나무로 하지 않고 종소리로 한 것은

꽃이 작은 종처럼 아래를 향해 피어있기 때문일 게다.

순결하고 겸손한 꽃임에도 조금은 과장되게 무서운 독을 가진 열매를 부각시켰다.

떼죽음이라기 보다는 잠시 기절한 것일텐데 그리 표현했을 테다.

어쨌거나 사포닌성분이 있다니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어도 작은 물고기에게는 

해로울 수 있겠다.

하필 계곡 주변에 자라는 때죽나무이니 가끔 작은 물고기들이 기절초풍하겠다.

하얀 꽃들이 종소리를 낸다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 평화로운 마음이겠지.

그런데 때죽나무의 이면이 그대와 같다니,

그대는 누구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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