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78 수선화 감정 [최문자] 수선화 감정 [최문자] 꽃꿈이었다 수선화 한 송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슬프네 슬프네 하면 서 나를 따라다녔다 슬프다고 나에게 도착하는 것과 슬프 다고 나를 버리는 것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아침, 꽃들에게 물을 주면서 트로트 가수처럼 흰 꽃에 게 물었다 새삼스럽게 네가 왜 내꿈에 나와 꽃꿈을 꾸는 동안 코로나 확진 받고 한 청년이 다섯 시 간만에 죽었다는 뉴스가 시청 앞을 통과하고 반포대교를 건너 거제 저구항에서 첫 배를 타고 소매물도까지 건너가 는 동안 이윤설 김희준 시인이 죽고 최정례 시인까지 죽음 을 포개는 동안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데 베란다에서 수선화 한 송이가 신나게 피고 있는 거야 죽음은 꽃과 별과 죽은 자들의 변방에서 얼어붙은 채 감쪽같이 살아 있었던 거야 한 번도 붉어 보지 못한 이 흰 꽃.. 2022. 4. 12. 작은, 것들 [김안녕] 작은, 것들 [김안녕] 정작 날 울린 이는 손수건 한 장 내민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 혜화역 술자리에서 언니 언니 하다 택시 같이 탄 그이가 손에 쥐여 주고 간 파란색 손수건이 십 년째 땀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니 먼지처럼 작은 것이 솜털처럼 가벼운 것이 참 이상하지 그 천쪼가리 하나가 뭐라고, 손수건을 받으면 참았던 토사물 눈물 다 터져 나오고 서러움 분한 마음 봇물처럼 나오고 가방 속에 든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그 쪼가리 하나가 대체 뭐라서 - 사랑의 근력, 걷는사람, 2021 *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크낙한 사랑을 주고 받은 사이도 아닌데 어떤 순간 작은 사랑을 베풀어주고 간 그 사람이 소중하다거나 큰 사랑을 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손수건 따위를 건네주는 그 마음이 헤아려지고 배려했던 그.. 2022. 4. 10.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사이를 말하다. 1 [송연숙] 사이는 감정이 살고 있는 집 정말 예민해 입술에 검지를 대고 발꿈치를 들고 걸어야 해 와장창 소리가 들린다면 이미 틀어졌거나 틀어지기 쉬운 사이 꽃과 꽃 사이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듯 기분 좋은 사이가 되려면 꽃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바람의 결을 읽듯 꽃의 마음을 잘 읽어야겠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냉정한 사람이 살고 있어 결과를 평가할 때 사이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지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을 끼워놓고 힘들었던 경우도 있어 그럴 땐 펼쳐놓은 일들을 혹은 사람들을 얼른 거둬들이거나 다음 장으로 넘겨주기도 해야 해 그래야 사이도 숨을 쉴 수가 있지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질투심 많은 사람도 살고 있어 꽃처럼 좋은 사람과 있을 때 봄처럼 신나는 일을 할 때는 사이를 확 좁혀버려.. 2022. 4. 6. 묵시록 [신미균] 묵시록 [신미균] 꽃병 끝에 앉아 있는 파리와 그 파리를 내리치려고 공책을 들고 있는 내가 눈이 마주쳤다 날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리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로의 속을 알 수 없는 살벌한 한낮 -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파란, 2020 ** Moment Of Truth! 투우사가 황소와 이리저리 힘을 뺀 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칼로 정수리를 찌르는 찰라가 바로 진실의 순간이다. 싸움에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사랑에 성공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돈을 딸 것인가 잃을 것인가 시험에 합격할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 살면서 대면하는 이 진실의 순간을 마주칠 때 긴장감은 최고조가 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과는 둘 중 하나라는 것. 희열이냐 절망이냐 둘 중 하나라는 것. 코로나가 유행하는데 마스크를 쓸 것.. 2022. 4. 6.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