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들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2022. 2. 12.
시인의 애인 [김중일]
시인의 애인 [김중일] 아주 오래전에 고드름처럼 자라는 열매가 있었다, 그건 잠든 시인을 안고 있는 애인의 눈꺼풀에 매달린 눈물, 불현듯 시인의 정수리로 뚝뚝 떨어질 뾰 족한 운석, 시인이 한숨 많은 애인을 끌어안자 가슴 가득, 울음 참는 들숨처 럼 스며드는 한숨의 애인, 오늘도 시인은 애인에게 보여줄 시를 썼다, 시를 받아든 시인의 애인은 한숨을 폭 쉰다, 이 시는 당장 읽지 않으면 금세 녹아 서 사라져버리겠지, 두 손이 부재의 기억으로 끈적이고, 기도를 멈출 수 없 게 완전히 달라붙어버리겠지, 시인의 애인은 시인을 먼저 살다 간 사람, 시 인이 이제 살다 갈 사람, 한달 전에도 백년 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 은 여기 있다, 오늘도 시인의 애인은 시인의 시를 도무지 이해할..
2022.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