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276 망원 [김안녕] 망원 [김안녕] 망원, 망원은 희망보단 원망하는 마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다 퇴근할 때 그런 마음은 더해지고 시를 써야 할 텐데 못 쓴 날들이 얼마나 되었지, 어쩔 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저녁 끼니로 순대 일 인분을 산다 ―내장 넣어 드려요? ―간만 빼고 주세요 ―간만 달라는 분도 있고 간만 빼고 달라는 분도 있고 다 달라요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삐져나오고 푸드트럭 사장님은 길바닥에 사는 현자구나 희멀건 허공 간질이듯 내장 냄새 피어오른다 ―멀리 가요? ―예, 멀리 갑니다 순대는 비닐에 한 번 담기고 신문지에 돌돌 말려 사각 보따리가 된다 ―이렇게 싸면 식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요 나는 정말 멀리 가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태릉행 전철을 탄다 식지 않는 순대가 식지 않을 심장처럼 동행.. 2022. 7. 5. 가능주의자 [나희덕] 가능주의자 [나희덕]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그렇다고 제가 나폴레옹처럼 말하려는 건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불가능들로 넘쳐나지요 오죽하면 제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냈겠습니까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듯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산산조각난 꿈들을 어떻게 이어붙여야 하나요 부러진 척추를 끌고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고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 2022. 7. 4. 수학의 정석 - 소수(素數) [진해령] 수학의 정석 - 소수(素數) [진해령] 일과 자신밖에 모르는 소수(素數)인 당신 2호선 전철을 타고 고시원과 회사를 오가며 삼각김밥 참치 맛 두 개와 사발면에 청춘을 말아먹는 무한반복 하루하루가 순환소수인 당신 비참에는 휴일도 없어 주말이면 더 바닥이 보이는 실체와 망상이 뒤섞여 누가 나인지도 모르는 복소수인 당신 1이 소수(素數)가 아니듯 한 번도 무엇이었던 적 없는 당신들 흰 셔츠의 당신 검은 슈트의 당신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당신들이 있어 기차가 떠나고 비행기가 뜨고 상점들이 문을 열지만 그러므로 도처에 무심이 흘러넘친다 냉정의 홍수 무관심의 포만 주유소 뒤편 공터에는 머리카락을 돛대처럼 세운 아이들 떠나온 별을 향해 조난신호라도 보내는지 빨간 담뱃불이 우주를 향해 깜빡이고 있다 - 너무 과분하고.. 2022. 7. 1. 사막의 잠 [진해령] 사막의 잠 [진해령] 발밑이 온통 모래구럭이었다 벌어먹는다는 게 사하라였고 자식을 기른다는게 모하비였고 고비였다 딘봉에 비린 물을 때려 넣고 허접한 소금 등짐을 지고 떠돌던 때 더 그악해지기 위해 모질게 마음을 분지르던 거기가 나미브였다 참을 수 없는 반감과 환각에 시달린 젊은 날 잠시 걸린 열병에 눈 멀었던 붉은 땅 와디 럼 껴안으면 더 깊숙이 찔러오던 가시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뜬 눈으로 견디던 다나킬의 밤 언제나 등 뒤를 조심했지만 출처 없는 소문이, 출구 없는 파국이 조간으로 배달되었다 잠들지 마라 칼라하리, 듣기엔 근사한 소프라노 가수의 이름 같지만 목이 말라 괴롭다는 사막의 이름 생은 그런 거다 듣던 것과는 다른 다가가 보면 이미 죽어있는 사내의 눈에 구더기가 끓고 있는. - 월간 '시.. 2022. 7. 1. 이전 1 2 3 4 5 6 7 8 ··· 6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