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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자 [이홍섭] 나무의자 [이홍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는 툭 하면 차를 바꾼다. 몸이 차의 안락에 적응하면 자기 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잉글랜드의 귀화 요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조국 웨일스를 고수해 단 한 번도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그는 툭 하면 차를 바꾸며 여전히 현역으로 그라운드 를 누빈다. 가난한 나는 차 대신 툭 하면 의자를 바꾼다. 기어코 딱 딱한 나무의자로 되돌아와 척추를 곧추 세웠다 허물기를 반 복한다. 나에게 귀화해달라고 애걸하는 나라는 없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 남루한 조국을 버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대 신 툭 하면 의자나 바꾸며 살아가려 한다. 의자가 나를 안기 전에 내가 의자를 버릴 것이다. - 검은 돌을 삼키다, 달아실, 2017 * 국적은 바꿀 수 있어.. 2022. 2. 12.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들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2022. 2. 12.
시인의 애인 [김중일] 시인의 애인 [김중일] ​ ​ ​ ​ ​ ​ 아주 오래전에 고드름처럼 자라는 열매가 있었다, 그건 잠든 시인을 안고 있는 애인의 눈꺼풀에 매달린 눈물, 불현듯 시인의 정수리로 뚝뚝 떨어질 뾰 족한 운석, 시인이 한숨 많은 애인을 끌어안자 가슴 가득, 울음 참는 들숨처 럼 스며드는 한숨의 애인, 오늘도 시인은 애인에게 보여줄 시를 썼다, 시를 받아든 시인의 애인은 한숨을 폭 쉰다, 이 시는 당장 읽지 않으면 금세 녹아 서 사라져버리겠지, 두 손이 부재의 기억으로 끈적이고, 기도를 멈출 수 없 게 완전히 달라붙어버리겠지, 시인의 애인은 시인을 먼저 살다 간 사람, 시 인이 이제 살다 갈 사람, 한달 전에도 백년 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 은 여기 있다, 오늘도 시인의 애인은 시인의 시를 도무지 이해할.. 2022. 2. 12.
그대라는 시 [권지영] 그대라는 시 [권지영] 고개 숙여 울고 있는 내게 세상은 그저 어두운 벽 혼자라고 느낀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였을지 몰라 갈 곳을 몰라 주저앉아버린 채 시린 바람에 흔들리던 시간들 웅크린 내 어깨 위로 가만히 다가와 손 올리던 그대 안개가 걷히고 바람이 잦아든다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는 눈빛 하나로 오직 내게로 걸어오는 살아야 할 이유 슬픔도 꽃의 말로 받아 적는 그대라는 시 오롯이 품고 가는 꿈결 하나 -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달아실. 2020 * 권지영 시집은 표지 뒷장에 권지영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울산에서 태어나고 매일 여행을 꿈꾸며 살고 있다. 영화와 음악, 사람과 풍경이 깃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 그리고 그 밑에 쭈욱 내려가면 요렇게 씌어 있습니다. "달아실 시선은...... .. 2022.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