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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시 [안현미] 하시시 [안현미] 바람이 분다 양귀비가 꽃피는 그녀의 옥탑방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어제, 다녀갔다 하시시 웃고 있는 여자 환각을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오늘, 다녀갔다 사랑은 떠나지 않아도 사내는 떠났다 하시시 울고 있는 여자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내일, 다녀간다 하시시 피어오르는 향기 그림자를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마리화나 같은 추억 하시시 바람이 분다 아편과 같아 사내는, 중독을 체포할 수 있는 수갑은? 그녀의 옥탑방 하시시 양귀비꽃 붉다 - 사는 게 참 꽃 같아야(박제영 저), 늘봄, 2018 * 대마초의 진액이 인도말로 하시시. 마약을 하면 배시시 웃는 걸까, 하시시 웃는 걸까. 라면 먹고 갈래요? 가 발전하면 중독이 되어 라면 먹자,가 된다. 사랑은 아편과 .. 2022. 2. 26.
무갑사 바람꽃 [류병구] 무갑사 바람꽃 [류병구] 무갑사 뒷골짝, 그늘볕을 쬐던 어린 꽃 가는 바람 지나가자 여린 목을 연신 꾸벅댄다 전등선원 동명스님은 깜빡 졸음도 수행이라 했다 꽃도 절밥을 하도 먹어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요새 무갑산엔 허물 벗은 봄이 바람이고, 바람이 꽃이다 - 달빛 한 줌, 시각과 언어, 2015 * 박제영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3,4월엔 너도바람꽃이 피고 5,6월엔 나도바람꽃이 핀다 했다. 무갑사에 피는 저 꽃은 너도바람꽃이라는 게다. 스님의 말씀은 깜빡 졸음도 수행이라 하였으니 봄볕에 졸아도 용서가 된다는, 자비의 말씀이다. 너도바람꽃이 눈치채고 깜빡깜빡 마구마구 조는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나도바람꽃이 더워서, 너무너무 더워서 아무 그늘에서나 정신줄 놓고 졸고 있겠다. 2022. 2. 26.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박주하]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박주하] 작은 새의 발가락이 점점 가늘어진다 적막한 식욕으로 어딘가를 다녀오는 꿈 어딘가를 다녀오는 생각들 서랍 속에는 투명한 망설임으로 가득하다 아주 먼 곳을 꿈꾸는 새를 위하여 투명은 침묵의 푸른 빛을 풀어 준다 파도 끝에서 새는 솟아오르고 새는 단 한 번 푸르러진다 투명의 자취를 지운 허공으로 울음밖에 배운 게 없는 텅 빈 마음이 차디찬 입술을 들고 산다 고요에 몸을 씻은 새가 투명한 의자에 투명하게 앉아 있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 마음을 만들지 않는 새의 세계 머무를 까닭을 버린 새는 칠흑의 밤을 날아 오른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더 깊이 어두워지는 맨발 - 시와편견, 2021 겨울호 * 계절 탓일까, 나이 탓일까. 밤새 무슨 꿈인가를 .. 2022. 2. 26.
알레비오 관측소 [조용미] 알레비오 관측소 [조용미] 알레비오 관측소에 가서 별을 보고 싶은 두통이 심한 밤이다 거문고자리의 별을 이어보면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나 타나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지난 시간의 어느 때와 이어보면 내가 아 닌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걸 보려면 더 멀리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멀리 갔다 되돌아와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지금은 단지 고열에 시달리고 있고 생의 확고부동과 지루함에 몸져누웠을 뿐이다 입술이 갈라 터진 것뿐인데 아는 말을 반쯤 잃어버린 것 같다 아무래도 좀더 먼 곳에서, 거문고자리의 물고기를 발 견하듯 이 두통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치하기 힘든 몸이고 살이다 알레비오 관측소까지 가야만 하는 고단한 생이다 아주 멀지는 않다, 두어 번 더 입술이 터지고 신열을 앓다 봄의 꽃잎처럼 아주 가벼워지.. 2022.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