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78 적 [임희구] 적 [임희구] 구원할 것도 없는 망망한 집에 단골인 집사님이 찾아왔다 책장의 책들을 뒤적인다 불교에 관한 책이 있냐고 묻는다 커피 한 잔 타드릴까요? 어제 전도하러 간 집에서 노스님을 만났단다 성경을 참 잘 알더란다 적을 알고 싸워야 적을 이길 수 있으니 불교서적 있으면 몇 권 빌려달란다 불교에 관해 뭘 좀 알고 얘기를 해야 스님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겠단다 모처럼 강적을 만났다는 듯 집사님 힘이 넘친다 커피 탈 맹물이 팔팔 끓는다 - 소주 한 병이 공짜, 문학의전당, 2011 * 하룻강아지는 범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고 했나? 기독교를 믿는 집사님이 불교를 믿는 노스님을 이기려고 하다니. 귀여운 발상을 하고 있다. 다음에 어떤 세상으로 가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고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이니 종교란 그저 하나.. 2021. 10. 3. 모든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고 [성선경] 모든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고 [성선경] 내 도장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 이것을 나는 무슨 벽사의 부적처럼 여기고 주머니 안에 넣어 다니며 몰래 남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리고 무슨 못 들을 말을 듣거나 못 볼 일을 보게 되면 만지작거리고 벽사의 주문처럼 웅얼거리고 이 대추나무 뼈다귀를 움켜쥐게 된다 알고 보면 모든 대추나무는 벼락을 맞고 이 벼락 맞은 대추나무 뼈다귀들이 축제의 난전에서 도장으로 환생하지만 그래도 참 이딴 것에 하고 우스워도 하지만 이는 정말 잘 모르고 하는 일 벼락에 맞는 일은 환골하는 일 벼락을 맞는 일은 탈태하는 일 한 생애를 뛰어넘는 일이다. 나도 언젠가 벼락을 맞아봐서 안다. 그래서 벼락 맞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안다 내 도장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 .. 2021. 10. 2. 그리운 나라 [장석주] 그리운 나라 [장석주] 1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젊은 날의 첫 아내가 사는 고향 지금은 모르는 언덕들이 생기고 말없이 해떨어지면 묘비 비스듬히 기울어 계곡의 가재들도 물그늘로 흉한 몸 숨기는 곳 이미 십년 전부터 임신 중인 나의 아내 만삭이 되었어도 그 자태는 요염하게 아름다우리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연기가 토해내는 굴뚝 속에서 꾸역꾸역 나타나는 굴뚝 아래 검은 공기 속에서 낙과처럼 추락하는 흰새들의 어두운 하늘 애꾸눈 개들이 희디흰 대낮의 거리에서 수은을 토한다 - 수은을 먹고 흘리는 수은의 눈물, 눈물방울 절벽 같은 천둥번개 같은 2 시월이면 돌아가리 그리운 나라 달의 엉덩이가 구릉에 걸리고 너도밤나무 숲속 위의 하늘에도 그리운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자주 발견된다 아내의 지느러.. 2021. 10. 2. 고맙다 [이문재] 고맙다 [이문재] 시동을 켜자 바로 네비게이션이 들어온다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 열세대가 길을 일러준다 홋카이도 상공에 두대 멀리 고비사막과 터키 상공에도 인공위성이 몇대 더 떠 있다고 한다 고마워라 여자 성우가 좌회전하란다 과속방지턱이 연이어 나타난단다 목적지까지 149킬로미터 세시간 십삼분 걸린단다 실시간 교통정보란다 도계를 넘자 경상도 사투리로 바뀐다 고마우셔라 우리는 저승 가는 길에도 내비게이션이 필요할 것이다 천국과 지옥 상공에도 새까맣게 인공위성이 떠 있을 것이다 우리 저승 가는 길에도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문자메세지는 아마 무료일 것이다 - 혼자의 넓이, 창비,2021 * 열이 모였다가 다섯이 모였다가 그것도 안 된다고 둘만 모이라고 하고 그 마저도 위험하니 혼자가 되어야 하.. 2021. 10. 1. 이전 1 ··· 66 67 68 69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