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78 유목민의 눈 [김형술] 유목민의 눈 [김형술] 평원의 사람들은 멀리 본다 거침없이 먼 지평선이 지척이다 구름의 속도 비상하는 매의 숨겨진 발톱 초원에 갓 핀 꽃잎 속 이슬 한 방울이 그들 눈 속에 있지만 그것은 시력이 아니다 발 닿는 곳 모두 길이자 머무는 곳 모두 집으로 가진 무심 무욕 선한 영혼의 힘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바람을 낳아 방목하는 천진한 힘으로 천 리 밖 비를 헤아리고 만 리 밖 별을 읽는 아득히 푸른 저 유목민의 눈 - 스미다, 김수우 엮음, 2016 * 오랜만에 안경알을 바꾸려고 단골 안경점을 갔다. - 오랜만에 오셨네요, 사년만이예요. 대개 이년에 한번 들러 알을 바꾸거나 안경테를 바꾸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요즘 눈이 침침해져서 사년만에 들렀다. 그새 시력이 저하되어 왼쪽 눈의 시력이 영점 이가 낮아.. 2021. 10. 8. 이 세계 [김행숙] 이 세계 [김행숙] 이것을 이 상자에 넣었으므로 저쪽 상자엔 넣을 수 없지* 이것이 네 신발이야 걷고 뛰어라, 상자가 충분히 커다랗다면 저쪽 세계를 기웃거릴 이유가 없지 쫓아가는 경찰도 쫓기는 도둑도 모두 죽어라 뛰어간다 상자를 살짝 흔들면 경찰이 쫓기고 도둑이 죽어라 쫓 아간다,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밤이 오면 너는 신발을 성경책처럼 가슴에 품고 잠이 드네 내 아기, 세상모르게 잘 자라, 모든 강물이 다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단다** 나는 신발 공장의 일개 노동자 새 신발을 새 상자에 넣는 일을 한다네 상자 속에, 상자 속에, 상자 속에, 상자 속에······ 하, 이 것은 끝이 없네 이것이 깊고 깊은 어둠이야 어둠 속으로 손을 넣어 잘 찾아봐, 이것이 네 신발이야 * 황 정은 「.. 2021. 10. 8. 귀는 소리로 운다 [천양희] 귀는 소리로 운다 [천양희] 귀뚜라미 소리가 귀 뚫어, 귀 뚫어 우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귀를 닫고 산 까닭이다 내가 나를 견디는 동안 눈을 닦고 보아도 산빛은 어둡고 강물은 먼 데로만 흘러가 꽃 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이 세상 모든 소리는 비명 같아 귀에 한 세상 넣어주는 소리만이 침묵을 대신하는 유일한 문장이라고 쓰고는 하였다 어디서 오는 소리든 슬픈 소리는 눈으로 듣고 귀는 소리로 운다고 귀 뚫은 듯 귀 뚫은 듯 이렇게 자꾸 귀 기울여보는 것인데 나는 이제 다른 소리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되었다 귀는 소리로 운다 - 지독히 다행한, 창비, 2021 * 보는 것도 많고 보이는 것도 많고 많은 세상.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엄청 많고 크고 잡스럽고 탈도 많은 소리들을 듣는다. 그 .. 2021. 10. 7. 중심에 관해 [허연] 중심에 관해 [허연] 중심을 잃는다는 것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회전목마가 꿈과 꿈이 아닌 것을 모두 싣고 진공으로 사라진다는 것 중심이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가장 막막한 일이다 어지러운 병에 걸리고서야 중심이 뭔지 알았다 중심이 흔들리니 시도 혼도 다 흔들리고 그리움도 원망도 다 흔들리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내게도 중심이 있어서 시소처럼 살았지만 튕겨나가지 않았었구나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사, 2020 * 늘 중심을 잡고 살았었으니까 중심을 잃었을 때 막막함을 느낄 거라고는 생.. 2021. 10. 7. 이전 1 ··· 63 64 65 66 67 68 69 70 다음